이슬 맺힌 아침

이슬 맺힌 아침

  • 2025. 3. 8.

    by. 이슬 맺힌 아침

    목차

      애플 실리콘(M 시리즈)의 성공과 ARM 칩의 부상

      애플 실리콘(M 시리즈)의 탄생과 배경

      애플(Apple)이 맥(Mac) 제품군에서 인텔 칩을 버리고 자체 개발한 애플 실리콘, 즉 M 시리즈(예: M1, M2)를 탑재하기로 결정한 것은 IT 업계를 뒤흔든 사건 중 하나다. 과거 애플은 맥북·아이맥·맥 프로 등에 인텔 CPU를 사용해 왔지만, 모바일 디바이스인 아이폰·아이패드에서는 직접 설계한 ARM 기반 칩(A 시리즈)을 채택해 왔다. 이 A 시리즈 칩은 iOS 생태계에서 오랫동안 고성능·저전력을 인정받으며 애플 제품 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는데, 2020년경부터는 더 이상 데스크톱에 인텔 칩을 얹는 방식이 최적이 아니라 판단한 애플이 iOS 기기로 쌓은 칩 설계 노하우를 맥 라인업으로 확장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인텔 칩은 오랜 기간 데스크톱·노트북 시장에서 표준 아키텍처로 자리해 왔지만,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다다르고 저전력·모바일 연산이 중요해지면서 인텔 x86 아키텍처의 효율성은 의문을 받았다. 반면 애플은 이미 아이폰·아이패드용 A 시리즈 칩에서 뛰어난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입증했고, 이를 기반으로 맥에 맞춘 데스크톱급 프로세서 M 시리즈를 개발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일관되게 통합해 높은 최적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2020년 말 M1 칩이 탑재된 맥북 에어와 맥 미니가 등장했을 때, 기존 인텔 맥 대비 월등한 전성비(성능 대비 전력 효율)와 적은 발열, 긴 배터리 시간을 보여 업계와 소비자들을 놀라게 했다.

      애플 실리콘(M 시리즈)의 구조와 강점

      M1, M2 칩은 ARM(Advanced RISC Machine)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는 SoC(System on Chip) 형태다. CPU·GPU·뉴럴 엔진(NPU)·메모리 컨트롤러·미디어 엔진 등 다양한 기능을 단일 칩에 통합함으로써, 패키지 간 지연을 최소화하고 전력 소모를 낮추는 방식을 취한다. 특히 통합 메모리(Unified Memory) 구조를 채택해 CPU와 GPU가 물리적으로 동일한 메모리 풀을 공유하므로, 데이터 복사 없이 연산을 처리할 수 있어 성능이 효율적으로 나온다.

      또한 ARM 기반 RISC 디자인은 인텔 x86에 비해 명령어 세트가 단순해 저전력 설계에 유리하다. 애플은 이를 더욱 최적화해, 맥OS가 필요한 고성능 연산(코어 수 확장, 고속 캐시 설계, 뉴럴 엔진의 AI 연산)과 iOS에서 발전한 모바일 기술(저전력·발열 제어)을 조합했다. 그 결과 보통 노트북용 x86 칩보다 훨씬 낮은 TDP(열 설계 전력)로도 높은 성능을 내며, 팬리스 디자인(맥북 에어)이나 소형 폼팩터(맥 미니)를 구현해 냈다. 후속 모델인 M1 Pro, M1 Max, M1 Ultra, 그리고 M2 시리즈는 CPU·GPU 코어를 늘리고 대역폭과 캐시를 확장하며, 영상 편집·3D 작업·머신러닝 등에 탁월한 처리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애플 실리콘은 인텔 칩 대비 전력 대 성능비에서 우위가 확연해, 동급 노트북 대비 배터리 지속 시간이 2배~3배 이상 길거나 부하 시 발열이 훨씬 적다는 사용자 평가를 받았다.

      ARM 칩의 부상과 시장 영향

      애플 실리콘의 성공은 ARM 칩이 데스크톱이나 서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업계에 각인시키며, x86이 장악해 온 고성능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실 ARM 아키텍처는 모바일 디바이스(스마트폰, 태블릿)에서 세계적으로 표준처럼 활용되어 왔지만, 데스크톱·서버 시장은 인텔 x86이 오랜 기간 지배해 왔다. 최근 들어 AWS 그라비톤(Graviton) 같은 ARM 기반 서버 칩, 엔비디아의 ARM CPU 계획 등 다양한 ARM 서버 칩 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서 ARM이 x86을 일부 대체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중이다.

      ARM 칩은 명령어 세트가 간결해 전력 효율이 뛰어나므로, 대규모 병렬 처리를 수행하는 서버 환경에서도 이점을 발휘할 수 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운영자(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는 전력 비용과 발열을 줄이면서도 높은 처리량을 내길 원하므로, ARM 칩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한 ‘칩 설계 라이선스를 유연하게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다’는 ARM의 장점은, 특정 워크로드에 맞춰 SoC를 제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애플은 이미 이 모델로 성공했고, 앞으로 엔비디아, 퀄컴, 삼성, 미디어텍 등도 ARM 아키텍처를 활용해 서버·PC 시장에 진출을 노리는 흐름이 감지된다.

      이처럼 ARM 칩의 부상은 인텔·AMD가 장악하던 x86 생태계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데스크톱 시장에서 맥의 점유율은 아직 소수지만, 애플이 프리미엄 영역을 독점한다면 x86 기반 노트북이나 워크스테이션 제조사들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버 측면에서는 ARM이 아직은 일부 워크로드에 국한돼 있지만, 클라우드 업체가 자체 ARM 칩을 대규모로 도입한다면 인텔, AMD의 시장점유율이 장기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 특히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시도하려 했던 점(규제 불허로 무산)이 시사하듯, AI 시대에 특화된 칩 설계 유연성을 얻기 위해 ARM 생태계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점을 보여 준다.

      첨단 기술 시대의 과제와 전망

      애플 실리콘의 성공과 ARM 칩 부상은 PC·서버·모바일을 구분해 왔던 경계를 허물고, 특정 아키텍처가 모든 분야에 걸쳐 우위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x86과 ARM이 쉽게 한쪽으로 통합되기보다는, 각자의 강점을 가진 채 공존하거나 경쟁을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x86은 풍부한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높은 단일 스레드 성능, 폭넓은 하위 호환성을 강점으로 지니고 있으며, 많은 기업·기관에서 decades에 걸친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다. 반면 ARM은 설계 유연성과 낮은 전력 소모, 그리고 점차 성숙해지는 성능을 바탕으로 모바일·IoT부터 데이터센터까지 확장하는 전략을 펼친다.

      애플은 M 시리즈를 통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 전략(Vertical Integration)의 위력을 과시했고, 독자적인 칩 설계로 맥OS를 최적화함으로써 사용성이 뛰어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경험을 제공했다. 이런 성공은 다른 PC 제조사도 ARM 기반 Windows PC나 크롬북 등을 개발하는 데 자극이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Windows on ARM을 추진 중이지만, 초기 성능 문제와 호환성 이슈에 발목을 잡힌 상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ARM용 최적화를 진행하고 x86 애플리케이션 호환 계층이 개선되면서, ARM 기반 PC 생태계가 점차 커질 가능성이 있다.

      서버 시장은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가 자체 ARM 칩을 설계해 사용함으로써, CPU 구매 비용과 전력 소비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모델이 떠오르고 있다. AWS 그라비톤 시리즈가 대표 사례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도 ARM 자체 설계를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있다. 이 경우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서 인텔·AMD x86 CPU 대신 ARM 칩이 주류로 부상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가 완전히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x86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생태계와 하드웨어 호환성, 소프트웨어 최적화가 크므로, ARM이 단기간에 다 빼앗기는 어려운 일이고, 양쪽의 경쟁이 수년간 이어지면서 점진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안·라이선스 이슈도 앞으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ARM 아키텍처는 라이선스를 구매해 자사 칩을 설계하는 형태로 비즈니스가 운영되는데, 소프트뱅크가 ARM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ARM을 인수하려는 엔비디아 시도가 무산된 바 있다. ARM이 IPO를 통해 독립성을 유지한다면 괜찮겠지만, 특정 기업이 ARM을 인수하게 되면 반도체 설계 라이선스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 또한 애플처럼 완전히 칩 설계를 사내에서 진행해 SoC를 만드는 모델은 대규모 투자와 전문 인력이 필요해, 삼성, 구글, 아마존 같은 대기업이 아닌 이상 따라잡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애플 실리콘의 성공은 소비자들에게도 혁신적 제품 경험을 선사했을 뿐 아니라, 전체 반도체 업계에 ARM 아키텍처로도 데스크톱·노트북 수준의 고성능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는 모바일·IoT로 국한됐던 ARM이 서버·PC 등 하이엔드 시장으로 빠르게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인텔·AMD와 ARM 진영 간의 경쟁은 AI 시대·클라우드 시대에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애플이 향후 M 시리즈 칩을 어떻게 확장·개선해 맥 프로급 데스크톱까지 완전히 대체할지, 서버 분야에선 ARM 칩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지가 관건이다. 한편으로는 RISC-V 등 오픈소스 ISA(명령어 세트)도 주목받으며 칩 설계의 또 다른 길을 제시하는 흐름이 있어서, CPU 아키텍처 시장은 과거와 달리 더욱 다원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한쪽에서 보았을 때 x86이 수십 년간 누려온 지배력이 약화되고, 반대편에서는 애플·엔비디아·삼성·퀄컴 등 다양한 업체가 ARM 기반 SoC를 무기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역동적인 전환점이 형성되고 있다. 애플 실리콘은 그 전환점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애플 생태계 전반에 걸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완성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으며, 사용자들에게 빠른 속도·긴 배터리 시간·적은 발열이라는 혁신적 경험을 선사했다. 이 흐름이 어디까지 확산될지는 앞으로 수년간의 시장 반응, 소프트웨어 호환성 개선, 제조 공정 발전 등에 달려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IT 산업의 권력 구조와 사용자의 컴퓨팅 방식 자체를 재편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